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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베르 카뮈 - 이방인
    독후감 2023. 6. 28. 19:49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함

     

     <이방인>은 내 친구가 몇 달 전에 보고는 내게 극찬을 하면서 추천했던 도서다. 그러고 보면 <악마> 이후로 책 읽은 지 벌써 몇 달이나 지났다. 주에 하나 정도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역시 청춘은 가장 바쁜 시기가 맞긴 하나 보다. 

     여하튼간 이방인은 스토리를 따로 말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막스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은 당신이라면 반드시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오늘의 독후감은 해석에 그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책을 단 한 번 읽은 내가 해석한 내용이고, 사람마다 해석은 다 다르니 내 대답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점을 유념하길 바란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저명한 평론가분께서 이렇게 저술하고 있었다. "부조리에 저항한 인물의 이야기"

     나는 해석이 조금 다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인에 대해서 다룬다. 이방인이란 무엇인가. 사회와 녹아들지 못하는 개개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1부와 2부가 나눠져 있다.

      책의 1부는 이방인을 보는 개개인의 시선에 대해서 저술한다. 그 유명한 도입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는 주인공이 '이방인'인 그의 어머니를 대하는 시선을 함축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영리한 배치가 돋보이는데, '어머니'라는, 태어나자마자 얻게 되는 가장 강력한 애착의 존재를 마치 '무관심한' 것처럼 묘사함으로서 작품의 주인공을 '독자에게의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으로서 독자는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책의 1부는 전반적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주인공 뫼르소는 그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는 어머니가 죽어도 울지 않고, 어머니의 연인을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그러는 한편 그 역시도 어머니와 회사에 대해 무관심한 대상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함께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오히려 양로원(책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마 요양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을 훨씬 더 편한 곳이었다.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도의적인 애도는 표하지만, 목, 금에 모친상을 당해 휴가를 낸 주인공을 못마땅히 여기는, '무관심한' 모습을 견지한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친한 인물이라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작중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로 묘사되는 '레몽' 역시, 주인공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레몽은 마음에 들지 않고 의심간다고 여자친구를 폭행하는 인간 말종이기에 주인공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주인공은 레몽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한다. 레몽은 그것이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였는지 주인공 뫼르소와 친구가 된다.

     마찬가지로, 작중 주인공의 최대의 이해자이자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울 정도의 조력자인 연인 마리 역시 주인공은 이해하지 못한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주인공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에서 등 돌리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1부에서의 주인공은 마리의 구혼까지도 "네가 원한다면야". "다른 여자가 청혼해도 받지 않을까?" 등의 말로 차갑게 대한다. 1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뫼르소에게는 이방인이다.

     그리고 1부의 끝, 뫼르소의 살인은 이방인의 죽음을 뜻한다. 작가는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동기를 '햇살이 따가워서'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것이 진짜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화자로서 등장하는 뫼르소는 독자에게 이것저것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리와의 관계다. 여튼간 1부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이 살인 장면은 '이방인'인 주인공이, '이방인'인 친구의 사정 때문에 진짜 사전 그대로의 의미로 '이방인' 인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 장면이다. 또한 이 행동으로서, 뫼르소는 '이방인을 보는 주인공'에서 '사회에서 격리된 이방인'이 되고야 만다. 다르게 말해서. 뫼르소의 살인은 '이방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표현이며, 이제 본인이 이방인이 되었으니 그는 사회에게서 또다른 의미의 총살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된다.

     

     2부는 감옥 속의 뫼르소와 법정 싸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뫼르소는 2부에 와서야 그 어떤 이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고립된 '이방인'이 된다. 그의 최대의 이해자인 마리와의 단절을 겪으며, 또한 그가 '사회'에 있을 때 가질 수 있었던 '자유'를 잃으며 그는 '모든 것과 단절된 이방인'이 된다.

     2부에서 뫼르소의 이해자를 자칭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 역시 의미심장하다. 1부에서 뫼르소의 주변에 있던 인물들은 어머니, 어머니의 연인, 친구, 연인, 회사 사장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들이 1부에서는 뫼르소가 이해하는 인물들이자 뫼르소를 이해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2부에서 뫼르소를 이해하는 인물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성직자다. '법'과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정치'와도 연관이 있다. 즉, 2부에서 뫼르소를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구성 요건'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것은 뫼르소가 '사회에서 격리된 이방인'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뫼르소의 태도를 이들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1부와 다르게 레몽과 마리를 그리워한다. 특히 마리에 대해서는 아주 길고 진득하게 서술한다. 1부에서 그녀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듯 행동하던 인물이, 2부에서는 마리와의 삶에 대해서 계속해서 회고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그리며, 사형 선고 이후에는 그녀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 심지어는 그녀가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은 독자의 시선에서 그저 '이방인'이었던 뫼르소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에 이 공감할 여지조차 없는 사이코패스 같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모두가 나를 비난했으면 좋겠다'라는 결론을 내릴 때 독자들은 알 수 없는 공감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뫼르소가 '사회와 전혀 맞지 않는 이방인'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 희생당한 일반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니까.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뫼르소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 시절의 감성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를 돕다 칼부림이 나거나 총질을 하게 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와 나의 심리적인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것을 대변해 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뫼르소는 '자유'에 대한 함축 역시 함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 어딘가에도 뫼르소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아마 이것이 작가가 바란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숱한 '이방인'들이,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래서 내가 낸 대답은, '작가는 무관심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무관심의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는 숱한 억압을 받고, 결국 그 부조리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별개의 이야기로, 최근 전공을 포기했다. Unity 시행착오들 섹션에서 쓰듯 나는 원래 게임 코딩이 전공이었다. 그런데 캡스톤 디자인을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이 길과는 도저히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공을 포기하고 나니 매일매일 불안 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있던 것도 아니다. 하루에 8시간씩을 자격증 공부에, 2시간씩을 운동에 쓰고 남는 시간에는 일기를 쓰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을 하는 건 내가 정한 철칙이었다. 며칠씩 밤을 새 가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던 생활이 '능력 부족'으로 끝나자 심적으로 너무 피폐해져서다. 

     그런데 조금 쉬기만 해도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어닥치는 거다.

     특히 게임은 그 정도가 심했다. 나는 문화생활이 좋았고, 직업을 찾아도 문화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가고 싶다. 현 시점 원하는 곳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 문화생활을 하는 것은 내가 가고 싶은 인생과 관련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즐길 줄도, 분석할 줄도,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프로가 가진 능력일 테니까. 그런데 나는 내가 쉬는 동안에 하는 모든 문화생활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내가 원하지 않은 것에 너무 열심히 살아온 증거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공부'에 쓰던 인물이었으니까. 그걸 내가 원하지 않음을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방인>은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끝내고도 허무함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해 준 작품이었다. 작품 외적으로는 해석하는 즐거움과 지적 충족감을 만족시켜 주었고, 외우는 매일매일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기에, 또 내적으로는 나처럼 이제 주변의 모든 기대에서 빗나가버린 '이방인'에 대해 깊게 이해해주기에.

     

     오랜만에 읽은 책은 재미있었다. 힘들어질 때면 책을 한 권씩 읽어야겠다. 아주 어릴 때는 하루에도 몇 권씩 읽곤 했는데, 세월이 무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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